...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여운이 남아있어 손이 잘 움직이지 않네요. 손이 자꾸 멈추는 이유를 대강 짐작은 합니다. 이 이야기를 어떻게 글로 남기지에 대한 막막함이 첫 번째. 뭘 남겨도 직접 하는 것만 못하다가 두 번째. 이 복잡함을 해석할 역량이 못된다가 세 번째. 이런 '이야기'를 남김으로써 분노를 더 사고 싶지 않다가 네 번째.
.... 전부 이해하긴 했으나 이 엄청난 군상극을 하나하나 풀어쓰기엔 글이 너무 장황해질 것 같은 예감이 들고 몇몇 인물은 아직도 의문 속에 있습니다만 느낀 점을 간추리면 잔혹동화 그 이상의 무언가? 아발론은 나스가 쓴 스토리라서 나오기 전부터 기대를 많이 했었는데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분량도 엔간한 패키지 게임 한 개 정도의 분량이고 캐릭터도 전부 매력적이고요. 자꾸 끊기는 스토리가 감질나서 빨리 패치해 달라고 보채고 싶을 정도로.
이문대에 들어서서 본격적인 탐색을 진행하자마자 기억상실 전개가 나와서 당황한 것도 잠시, 조력자로 보이는 인물 아닌 요정과 조우하고 이문대 브리튼의 실상을 알게 되면서 나스 특유의 꿈도 희망도 없는 노답 상황에서 피어나는 인간찬가 요정찬가겠거니 했었는데 보기 좋게 예상이 빗나가다 못해 반대급부로 치달은 혐오의 시대를 봤습니다. 물론 각자의 명분이나 그렇게 남고자 하는 개념은 있었지만, 뿌리부터 개체가 아닌 복제 혹은 아류라 행동 기저에 발전 및 개선의 여지조차 없다는 점에서 왜 전정 됐는지 이해했달까... 솔직히 최후반부에서 이런 세계라면 다 없어져 버리는 게 낫지 않나라는 생각과 함께 최종 보스의 행동에 이의를 제기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도 그럴게, 선함도 악함도 순간의 즐거움으로 휙휙 바뀌면서 한없이 퍼주다가도 바로 등에 칼을 꼽아버리는 행위에 원인이나 이유는 없어요. 그냥 그게 재밌어 보이니까 그렇게 하는 겁니다. 그나마 상급 요정들이 자신의 존재 의의 때문에 그렇게 한다는 원리라도 있지 '어째서?'를 아는 건 외부에서 온 요정이나 범인류사에서 파생한 인물 혹은 그 인물들에게 영향을 받은 요정들 뿐이고... 하긴 태초부터 잘못 됐는데 그걸 바로 잡거나 나아가려는 여지조차 없다는 점에서 이미 배드 엔딩이 확정된 글러먹은 곳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냥 놔뒀어도 알아서 공멸했을 것 같지만 베릴과 모르간이 이문대 브리튼의 변수였겠죠. 없었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지금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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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을 진행하면서 종종 스킵을 할 수 없는 선택지에서 고민을 좀 했었고 그때마다 자꾸 오베론의 의문? 의표를 찔러서 의심은 전부터 했고, 클리어 한 뒤 스샷을 정리하면서 생각보다 떡밥을 자주 뿌렸었다고 다시 느꼈습니다. 저는 그냥 의심은 모르겠고 오베론이 신경 쓰여서 관심을 갖고 선택지를 고른 것뿐인데 어쩌다 보니 감춘 실체를 들춰버린 격이었지만 실망 같은 감정은 조금도 없고요. 더 나아가 정당하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솔직히 칼데아를, 인리를 적대시하지만 않았어도 이야기는 다르게 흘러갔을 거예요. 하지만 필연적으로 부딪힐 수밖에 없는 존재라 배제하게 됐을 뿐이고... 한없이 추락하는 공동에서 문득 CCC의 도입부를 떠올림그나마 이 녀석은 착지라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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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울한 시대에 걸맞게 탈락하는 인물들도 많았는데 특히 핵심 인물들이 대거 탈락해서 추후 스토리가 궁금해지는 이문대였습니다. 정말 이대로 끝이라고? 싶은 캐릭터가 얘네 두 명이네요. 한 명은 여태 개근하던 캐릭터였고 또 한 명은 이제 본격적으로 활동하나 싶었는데 여기서 탈락이라고?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대로 끝나는 게 많이 아쉽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만큼 매력적인데 포지션은 적이었지만 선의로 도와줬던 조력자들이라 더더욱... 진짜 이대로 끝인가요? 어이 버섯 양반!심지어 일러도 pako랑 타사장인데 진짜 이게 끝이냐고 어디 말 좀 해봐
한 편의 장대한 서사시를 공들여 읽은 여운으로 여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데 한동안 계속 떠오를 것 같습니다. 특히 연출과 OST도 압권이에요. 제 최애가 길가라 부동의 1위는 바빌로니아지만 충분히 위협 가능한 퀄리티고요. 게다가 허무한 후편 엔딩에서 이어지는 완결편의 완성도는 정말이지... 대단하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었습니다. 온통 떡밥인데 회수율도 높고, 회수가 안 됐던 건 대부분 다른 이문대 관련이거나 추후 등장 떡밥들 뿐이었고요. 지금도 유튜브에서 대관식~요정원탁영역:붕괴를 듣고 있는데 이만한 OST가 없어요. 완결편의 또 다른 테마인데 제목에 걸맞게 끝을 향해 붕괴(붕락)하는 세계에서 처절히 살아남으며 나아가는 비참함에 웃다 울고 그랬습니다.
솔직히 다음 이문대가 걱정될 만큼 완성도 높은 이문대라 페그오를 플레이하고 계시고, 스토리를 중시하는 마스터시라면 꼭 한 번 해보시길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최신 콘텐츠인 만큼 진입 장벽이 조금 있는 편이고 전투 난이도도 높은 축이지만 퀄리티, 연출, 분량, 애니메이션 컷 등등 어느 면으로나 부족함이 없는 곳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