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건꽃 올클했습니다.
공략 캐릭터가 세 명이고, 엔딩도 다 봤고, 혹시 몰라서 다른 선택지들도
이래저래 눌러보았으니 다 봤다고 해도 되겠죠. ECG와 BCG의 몇 장이 해금되어있지 않던데
이건 같은 장면을 몇 번 돌리고 엔딩을 봐도 마찬가지였으니 게임 자체의 오류인 듯싶어요.
하고 싶은 말이 많고, 드는 생각도 많은데
잘 전달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써내려 볼게요.
게임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올 클리어를 하는데 대략 3일? 정도 걸린 듯싶네요.
실제 플레이 타임은 그렇게까지 걸릴 양은 아니구요. 몰아서 한다면 느긋하게 한나절 정도.
시나리오가 그렇게 크지 않아요. 긴 서사에 부담감이 있으신 분들은 편하게 할 수 있는 분량입니다.
좋았던 점과 아쉬웠던 점이 있는데 나눠서 풀어볼게요.
먼저 좋았던 점입니다.
1. 프로그램 최적화가 잘 되어있다.
용량은 대강 2기가를 먹었지만, 게임 엔진이 빠르게 돌아갑니다.
제 컴퓨터 사양은 평균치인데 스킵 온/오프나 설정 온/오프, 세이브 등을
한꺼번에 처리해도 부드럽게 전환되는 등 엔진이 무겁지 않습니다. 여러모로 편했어요.
2. 사운드 퀄리티가 높음.
음성도 음성이지만 BGM, OP, ED, 뭐 하나 버릴 게 없습니다.
흐노니와 향연은 지금도 듣고 있구요. 테마곡 중엔 설호 테마곡인 리시안셔스,
BGM 중엔 베로니카가 맘에 듭니다. 대부분 게임 배경에 어울리는 한국적인 삽입곡들이어서 좋았어요.
3. 설정이 매력적.
이건 강건꽃의 모든 설정이 흥미로웠어요. 배경, 스토리, 캐릭터, 심지어 게임 시스템 설정도요.
아, 시스템 설정은 '캐릭터별' 음량 조절과 블로그 주소창이 열리는 부분입니다. 국내 게임에선 생소했던 시스템이라서요.
배경은 국내 사극. 현대면서도 현대가 아닌 퓨전 사극이었죠. 학원물이나 아예 딴 나라 이야기가 아닌
우리나라 옛 민간신앙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배경을 그린 부분에서 매력을 느꼈구요.
스토리도 선계에서 지내던 수인 족이 어떠한 계기로 주인공에게 찾아와 도움을 구한다는 이야기로
그들이 찾아오게 된 이유나 도깨비 왕과의 인연, 신선과의 대립, 명계에 얽힌 이야기 등등
이야기를 풀 수 있는 신선한 재료들이 제 취향이었습니다. 몇 상황은 올클을 했는데도 궁금한 점으로 남아있구요.
캐릭터 설정은 이루 말할 수 없죠. 도깨비, 구미호, 백호. 고양이, 소꿉친구, 왕
심지어 시종일관 재수 없게 나오던 염라대왕도 까칠한 게 매력적이더군요.
여기에 막강한 성우진분들이 열연을 해주셨는데 어떻겠어요. 성덕:너는 이미 치여있다.
개인적으론 자화랑이 정말 좋았습니다. 다른 캐릭터들은 메인 스토리 때문에라도 연애 감정선을
오롯이 비추지 못한 면이 있었는데, 자화랑은 확실히 연애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자화랑 개별 루트에 여우 구슬의 반을 여주가 가져가는 장면이 있는데 괜히 제가 다 부끄러웠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아쉬운 점들입니다.
1. 게임 전체의 볼륨이 작음.
강건꽃 게임 자체의 볼륨이 작습니다. 각 캐릭터당 ECG 4장. 기타 ECG는 2장. 개별 엔딩은 두 개.
이것도 호감도 잘 맞추면 하나의 엔딩이라고 봐도 되는 분량이구요. 스토리는 모든 루트에서 축약된 부분이 많이 보여요.
적과 자화랑이 찾아오는 장면-과거-현재 사이에 한 달의 공백이 있는데 여주와 어찌 친해진 것인지 얘기도 나오지 않고
이건 개별 루트로 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주의 감정 변화는 선택지에도 나타나듯 흐름이 이어지는 편이지만
공략 캐릭터들의 감정선은 뚝뚝 끊겨있는 편이에요. 대체로 태극도 수련 상대 선택지를 고르고 나면
이미 애정으로 바뀌어 있는 듯한 태도를 보여서 당황스러웠기도 했구요. 변화가 느껴지는 장면은 딱히 없었고
있었어도 그게 애정으로 바뀌는 포인트라고 하긴 좀 모호한 장면들이였구요. 마치 내가 모르는 숨겨진 시간이 있는 느낌?
이런 부분들은 볼륨이 부족하면 당연히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보여주는 장면이 듬성듬성 이니 예견된 흐름이죠.
캐릭터만 해도 이런데, 배경은 어떤가요. 뿌려놓은 떡밥은 수없이 많습니다. 도깨비 왕이 죽기 전에 했던 약조,
신선들과 수인 족의 다툼, 여주의 부모님 이야기, 선계-인간계-명계의 관계성, 설호가 인간계에 원혼들을 풀어버린 이후의 이야기 등등
풀리지 않은 재료들도 있고, 풀 수 있는 재료들도 있어 보였는데 응 없어 돌아가. 그냥 핵심 장면만 그려낸 느낌이 들었습니다.
좋게 말하면 핵심 이야기만 있으니 가볍게 즐기기 좋다는 거고,
나쁘게 말하면 캐릭터를 짜고 몇몇 장면만 덧붙인 소위 설정 덕질 느낌이 난다는 거죠.
전 약간 후자로 기울어져 있는데, 이걸 어디서 느꼈냐면 공통, 개별 포함 모든 루트에서 고정적인 장면이 있었구요.
테마곡들이 전부 꽃 이름인데, 그 꽃의 꽃말이 캐릭터와 일맥상통하는 게 느껴졌거든요.
특히 적이요. 동백(적)의 꽃말과 노멀 엔딩 및 진엔딩의 내용을 생각해보시면......
예상했던 스토리 볼륨에 미치지 못해 좀 길게 쓰긴 했지만, 그만큼 크게 아쉬웠던 점이었어요.
아마 저만 이렇게 느끼는 게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사실 이 부분이 게임의 핵심인데 여기서 점수 다 깎아 먹었어요.
아무리 그림 이쁘고 음악 좋아봐야 뭐합니까. 비주얼 '노벨'의 서사가 이런데요. 이 게임에 다른 부가적 요소가 있던 것도 아니고.
다만, 동인 게임인걸 고려한다면 이해는 하겠지만 전 PNB팀이라서 더 기대했던 부분이 있었는데 말이죠. 참 아쉽습니다.
2. 서브 캐릭터들의 서사 부족. (또는 운용 부족)
허준과 묘향, 요랑과 염라가 대상이 되겠네요. 성우는 탁원정 님과 김선혜 님, 최재호 님이셨는데
이리 좋은 캐릭터들을 두고 왜 이야기를 풀지 않았는지 의아했어요.
허준 같은 경우라면 딱히 겹사돈은 문제가 안 되잖아요? 여주의 부모님은 이야기상 행불이고,
아주머니는 여주를 끔찍하게 여기는데 둘이 그리 애틋하면서 왜 연애를 안 하는 것인지.
서로 자각만 못 했을 뿐이지 태도에 그냥 묻어나오던걸요. 왜 이런 캐릭터를 두고 서사가 없나 싶었습니다.
굳이 태극도 관련이 아니더라도 인간계에서의 조력자 포지션으로 쓸 재료는 많아 보였는데...
여주를 위하는 동생이자 오빠이자 친구. 심지어 잘 생기고 인기 많은데 붙어 다님. 여주 눈 높아! 아무튼, 제 기준엔 이해가 안 됐어요.
묘향이와 염라, 요랑은 연애까진 모르겠지만 노멀 루트 비슷하게 우정 엔딩이 가능해 보였는데 말이죠.
여주가 잘 구슬릴 입담과 담력, 근성도 있어 보이던데 음.... 이래저래 아까운 캐릭터들이 많았습니다.
허준은 질투 유발자로만 나오고, 묘향은 주인공 껌딱지고, 염라는 아랫것들에게 화만 내고, 요랑은... (암전)
이런 전개 말고도 활용도가 높지 않았나 싶어요. 공략 여부는 제쳐놓더라도요. 해줬으면 더 좋았겠지만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강을 건너온 꽃처럼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자화랑은 마음에 들어서 자형님의 목소리도 들을 겸 종종 돌릴 거 같지만
구매 추천은... 글쎄요. 선뜻 추천하긴 조금 힘든 게임이네요.
일반판은 그리 비싸지 않으니 가볍게 즐길 분에게 추천은 드릴 수 있을지도?
대신 많은 기대는 하지 마시구요. 만약 성덕이시라면 음성 값은 할 겁니다, 아마도.